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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과정'을 뺏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yechoi 2026. 1. 1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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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었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담은 글이다. 읽기 전엔 바둑은 나와는 먼 일이라고, AI가 잘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바둑에 대해 모르니 할 수 있던 생각이다. 바둑을 해 온 사람들은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둑을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류라고 불리는 기풍을 비롯해 경기에 임하는 태도 등 많은 것이 예술의 영역이었다. 그런 추상적인 것들이 기술 앞에서는 해체되어 지금은 승리라는 목적만이 남았다. 이기려면 인간도 AI 스럽게 둬야 한다. 기사들 간에 기보를 두고 토론하는 일은 줄었고 사람들은 그저 AI를 따라 하며 돌을 둔다. 

출근길에 라디오를 틀었다. 여론조사의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언가 익숙하다. 이건 notebooklm으로 만든 콘텐츠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불쾌감이 들어 라디오를 껐다. 왜 나는 불쾌했을까. 며칠을 생각해본 끝에 '언론사의 콘텐츠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닿았다. 내가 생각하는 기사는 취재도 중요하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독자에게 잘 닿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의 과정을 거쳐, 글을 써내려 탄생하는 콘텐츠인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과정이 없이 AI의 결과만 남았으니 불쾌감이 든 것이다.

여전히 나의 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일까? 알파고 등장 직전의 바둑기사는 아닐까? 나는 나의 백그라운드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여전히 성에 안차는 지점이 있지만 AI는 날이 갈수록 콘텐츠를 잘 만든다. 설문 조사 원 데이터를 몇 개만 넣으면 스토리라인과 강조점이 명확한 슬라이드가 뚝딱 탄생한다. AI가 만든 콘텐츠를 따라서 리포트를 만들거나 아니면 그 자료를 그대로 활용해도 무방하다. 최근에는 AI 프로젝트 매니징 프로덕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가 만든 AI 프로덕트는 회의록만으로도 프로젝트의 상태를 잘 진단해 준다. AI가 만든 리포트를 보고 리스크 리스트를 업데이트한 적도 있다. '딸깍'의 퀄리티는 점점 높아지고,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AI가 인간에게서 '과정'을 뺏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았다.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 인간은 고민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이 일이 어떤 일인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고 경험을 통해 역량을 쌓았다. 조금이나마 떳떳한 기자가 되려고 기사는 어때야 하는가 고민하고 나름의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잡아가며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쓰고 고치면서 가다듬는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 매니징 방법론도 익히고 지식으로 챙길 수 없는 리스크 센싱 능력은 경험으로 길러지기를 바래본다. 이런 과정 없이 AI가 꽤나 괜찮은(앞으로는 정말 괜찮을)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인간은 그걸 사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무언가를 잘한다는 건 '안목'이 생겼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판단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수도 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판단도 생긴다. AI 시대에는 AI의 결과물을 잘 리뷰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게 인간의 역할이라는데, AI의 결과물을 잘 사용하기만 해온 인간에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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