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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écris

기자를 그만둔 이유, 광고성 기사

yechoi 2020. 9. 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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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직업은 기자였다. 이름 있는 신문사의 계열사 중 한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계열사라 회사 자체의 규모는 크지 않았고, 명성을 날리던 과거에 비해 경영이 어려워진 듯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본지가 매체력이 컸기 때문에 취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아니, 취재하는 데 톡톡히 도움이 됐다. 취재분야의 국내외 명사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 거절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자가 하는 일은 내게 잘 맞았다.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재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이를 정리해 글로 써내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꼈다. 이 모든 과정이 쉬웠던 적은 없지만, 기사를 내보낸 후 취재원에게서 '덕분'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람이 가득했다. 내가 쓴 글이 여러 사람에게 읽히고 공유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주어진 취재 분야에서 더 좁혀 나만의 취재 영역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해당 분야 취재원들이 나를 찾기 시작한 시점에 나는 기자를 그만두기로 했다. 여전히 취재와 기사 쓰기가 즐거웠음에도 내린 결정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이 중 한 가지의 이유(그만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인 '광고성 기사'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기획기사를 밀어내는 광고성 기사

 

광고성 기사는 내가 입사한 시점부터 퇴사하는 시점까지 큰 고민거리였다. 기자를 준비할 때는 내가 광고성 기사를 쓰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언론판에 광고성 기사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입사하지 않을 회사'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익에 혈안이 된 몇몇 인터넷 매체의 일인 줄만 알았다. 

 

입사 직후에서야 '나의 일'이라고 깨달았다. 입사 후 처음으로 참여한 회의에서 선배들은 '유가(有價)'라는 명목으로 아이템을 발제했다. 발제안에는 OO사, XX사의 상품을 모아 '수능 시즌 맞이 수험생 건강 증진법'을 주제로 한 기사로 내보내자는 식의 기획이 올라왔다. 기자의 영업으로 이미 광고주와 논의가 된 상태의 기획도 있었고, 어쩔 때는 기사의 단가도 당당히 올라왔다.

 

계약이 성사된 광고성 기사는 매체에 버젓이 실렸다. 지면에서 기자들의 기획기사보다 광고성 기사가 많을 때도 있었다. 기획기사의 데스킹이 끝나고도, 광고 기사가 지면에 자리 잡아야하므로 발행되지 못 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하물며 우리 지면 중 대표면에도 실렸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신년회의에서 '대표면만은 광고성 기사를 싣지 말자, 이러면 넘기지도 않고 버려지는 지면이 될 것'이라고 건의해, 그 이후론 대표면에서 광고성 기사가 빠지긴 했지만. 

 

우리 지면이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냐면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광고 계약을 체결한 기사 각각에 대해선 애드버토리얼이라는 안내가 붙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법은 '정기간행물 편집인은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해 편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광고성 기사도 기획기사와 동등하게 발행했다. 광고성 기사를 지면뿐만 아니라 포털에도 자주 내보내다가 포털 송출 제재가 걸리기도 했다.

 

 

이런 칭찬을 받으려 기자가 됐던가

 

수습 기간을 지나서는 내게도 광고성 기사를 쓰는 일을 줬다. 싫었지만 웃기게도 나는 이에 능했다. 잘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아무리 광고성 기사더라도 글로써는 읽을 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다면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여겼다. 광고성 기사의 취재라더라도 좀 더 재밌는 이야기, 유익한 내용을 끌어내려 애썼다. 어차피 쓸 수밖에 없는 광고성 기사,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광고성 기사가 기획기사와 함께 나간 여느 날,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근하고 있어 직접 받았는데 기사를 잘 봤노라고 PDF 파일이 있으면 보관하고 싶다는 한 독자의 문의였다. 그 기사는 영어 교육 업체의 광고성 기사였다. '동화책으로 영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주제로 썼더랬다. 최대한 정보성으로 쓰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광고성 기사를 '잘 읽었다'고 피드백이 오는 게 영 씁쓸했다. 

 

이런 경험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고 있는데, 이 주제에 대해 네가 써놓은 기사가 있어서 전화했다고. 네가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분야냐고. 그것 또한 어느 출판사의 광고성 기사였다. 겸연쩍기 그지없었다. 

 

내가 쓴 광고성 기사는 유난히 기획기사처럼 보이는 꼴이 됐다. '잘썼다'는 상사의 칭찬은 물론, 포털로도 잘만 송출됐다. 광고성 기사에 대한 포털의 제재가 있고 나선, 내부적인 심의를 거쳐 포털 송출 기사를 정했다. 광고성 기사를 가급적 내보내지 않기 위해 생긴 과정이었음에도 내 광고성 기사는 곧잘 송출 기사에 포함됐다. 그런 날이면 '이런 칭찬을 받으려 기자가 된 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내 이름으로 어떤 기사를 남기고 있는가' 회의감과 비참함이 휩쓸었다. 

 

 

취재수첩과 명함들

 

 

 

광고성 기사를 안 쓸 확률은 얼마일까

 

이런 일이 주어진 건 회사의 경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매체는 광고성 기사 덕분(...)에 적자를 간신히 피하는 듯했다. 내가 싫어했던 그 기사들은 밥줄에 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 싫은 광고성 기사를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회사로 가면 된다. 그런 매체는 얼마나 있는가. 나는 이 지점에서 부정적이었다. 광고비에 적게 흔들리는 회사는 아주 소수, 메이저 매체 몇 곳이라고 판단한다. 언론사에서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질 좋은 기사를 제공해 유료 독자를 모으는 것이겠지만, 지면은 날이 갈수록 안 팔린다.

 

기자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내가 취할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광고성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무뎌지며 다른 기사들에서 의미를 더 찾는 게 한 가지. 좀더 버텨 경력을 더 채우거나 입사 시험을 다시 봐, 소수의 안정적인 매체에 입사하는 것이 또 다른 한 가지. '다른 매체들도 그렇다'며 스스로를 타일러보고 다른 회사의 면접도 봐가며 두 가지 모두 시도했지만 성공하진 못했고, 다른 이유들까지 작용하면서 나는 기자를 그만뒀다.

 

기자를 준비할 때 후배가 "아무도 신문을 안 보는데 왜 신문기자를 준비해?"라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의의를 이야기하며 넘겼지만, 기자가 되고 나서는 이 질문을 곱씹게 됐다. 내가 이야기한 저널리즘의 의의를 지켜줄 비즈니스 모델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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